깁슨(Gibson) 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반응형

    일렉트릭 기타의 양대산맥 Gibson

    전에 포스팅했던 Fender와 양대 산맥으로 알려져 있는 Gibson(이하 깁슨)은 펜더만큼 깊은 역사와 명성을 자랑하는 최고의 일렉트릭 기타 회사 중 하나입니다.그만큼 깁슨도 음악의 역사에 없어서는 안 될 브랜드이며 음악의 발전에 큰 기여를 한 회사입니다.

    깁슨은 할로우바디의 표준을 제시하고 , 또 레스폴기타의 상징이 되기도 하는 회사로 험버커 픽업을 최초로 개발하면서 펜더의 싱글 픽업이 주가 되는 스트라토캐스터(물론 험버커 픽업 사용됩니다.)와 반대로 좀 더 따듯하면서 묵직한 드라이브에 좋은 깁슨 고유의 '색'을 만들면서 펜더의 뒤처지지 않는 강력한 행보를 보여주었습니다.

    SG기타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현대에 와서는 파산위기도 겪었지만 결과적으로 파산은 면하였으며 현대음악에 상대적으로 스트라토케스터가 많이 사용되지만 그래도 기타리스트라면 하나쯤 소장하고 싶어 하고 소장하고 있는 여전히 기타리스트들이 인정하는 기타 브랜드 중 하나입니다.

     

    Les Paul Guitar 의 상징이 된 Gibson.

     

    일렉트릭 기타가 아닌 만돌린을 만들던 회사 Gibson

     

    1922년 깁슨이 발표했던 F-5 만돌린.사진은 1974년식 F-5 만돌린.

     

     

    깁슨은 미시건주 칼라마주에 있던 구둣방 직원 오빌 깁슨(Orville H. Gibson)에 의해 탄생하였습니다.

    평소 음악에 관심이 많았고 만돌린을 좋아했던 오빌 깁슨은 만돌린의 소리를 개선하기 위해 여러 가지 연구를 하였고 그러던 중에 악기를 만드는 것에 재능이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오빌 깁슨은 기존의 만돌린 디자인에서 바이올린과 유사하게 앞판을 깎으면서 뒤판뿐 아니라 앞판도 볼록 튀어나오는 디자인의 만돌린을 개발하고 1898년 특허를 내게 됩니다. 그 기세를 이어서 1902년 드디어 깁슨이 설립되게 됩니다.(이때는 Gibson Mandolin-Guitar Mfg.Co, Ltd라는 상호의 만돌린 회사.)

    하지만 재밌는 사실은 펜더의 창립이야기와 다르게 오빌 깁슨은 회사 설립 후 경영에 크게 참여하지 않고 악기 개발에 약간의 도움을 주고 피드백만 주는 정도만 했다고 합니다. 한마디로 오빌 깁슨은 깁슨의 처음이자 이름만 남겼을 뿐 크게 기여한 건 없다고 합니다.

    깁슨의 진짜 시작은 1918년 오빌 깁슨의 사후 1919년 로이드 로어(Lloyd Loar)라는 디자이너를 고용하면서 시작되는데, 1922년 그가 개발한 후에 만돌린의 주 종류 중 하나가 되는 F-5 만돌린을 시작으로 같은 해 1922년 로이드 로어는 당시 팝 음악의 주류였던 블루그래스 음악에 스패니쉬 기타가 유행한다는 점을 반영하여 일반적인 어쿠스틱 기타에 깁슨 특유의 아치 디자인을 접목시킨 L-5를 발표합니다.

    그리고 2년뒤 1924년 로이드 로어는 회사를 떠나게 되지만 그로 인해서 만돌린을 만들던 회사인 깁슨은 어쿠스틱 기타를 만들게 되었고

    1936년, 이 L-5 어쿠스틱 기타에 픽업을 부착해보자는 관심에서 시작된 깁슨 최초의 아치탑 할로우바디 일렉트릭 기타인 ES-150을 발매하면서 역사적인 깁슨 할로우바디 라인인 ES(Electric Spanish) 라인이 확립되게 됩니다.

     

    이후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면서 깁슨공장이 군용 목재품을 만드는 공장으로 전환되기도 하고 1944년에는 시카고 뮤직(Chicago Music)이라는 회사에 매각되는 등 복잡한 역사가 이어지게 됩니다.(시카고 뮤직은 판매망만 관리했다고 합니다.)

    1949년 깁슨은 하단부 컷어웨이를 적용한 ES-175를 발표하면서 풀 할로우바디 기타 표준을 제시하며 많은 재즈 기타리스트들의 사랑을 받게 되었습니다.

     

     

     

    테드 맥카티 , 레스폴 , 그리고 ES-335

    지금까지 깁슨의 이야기는 분명 깁슨의 시작이지만 사실 모두가 흔히 알고있는 지금의 깁슨의 역사라고 하기엔 약간 사설이 길었다고 생각할 정도로 완전 다른 회사의 이야기다 싶을 만큼의 이야기였고 지금의 명성이 있게 만든 진짜 깁슨의 역사는 1948년 깁슨이 악기 전문가로 테드 맥카티(Ted McCarty)를 스카우트하면서부터입니다. 여기부터는 레스폴 기타와 할로우 바디에 대한 포스팅과 살짝 겹치는 이야기로 지금의 깁슨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는 게 레스폴 기타와 할로우바디 기타이기 때문입니다.

    테드 맥카티는 스카웃 후 단 2년 만에 깁슨의 사장으로 취임하게 됩니다. 그는 1952년 펜더가 텔레캐스터를 발표하면서 이에 대항하기 위해 기타리스트 레스폴(Les Paul)과 지금의 레스폴 기타를 발표하였고 1950년 중반에는 자사의 풀 할로우바디의 단점들을 개선하고 연주성과 휴대성 등 여러 가지 변화를 주기 위해 바디의 깊이를 만돌린 수준으로 줄인 기타를 만들어 Thinline이라는 시리즈를 만들어 판매하게 되는데 이 시리즈가 후에 세미 할로우 바디로 불리게 되는 모델입니다. 후에 양산형으로 ES-350을 발매하고 1958년 당시 유행하던 더블컷 디자인이 적용된 ES-335가 발표되면서 깁슨의 황금기가 열리게 됩니다.

     

     

     

    이후 깁슨은 플라잉V(Flying V) , 익스플로러(Explorer)등을 발표하지만 판매량이 불과 수십대에 그치는 등(저 처참한 판매량의 대표인 두 기타는 누구나 알고 있을 만큼 유명한 모델인데 사실 음원차트가 역주행하듯 이 기타들을 구매하였던 수십 명의 사람들로부터 실제로 악기를 사용해 봤던 사람들의 폭발적인 재생산 요구로 다시 팔리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이후 여러 가지 실험적인 기술과 스펙으로 위기를 타개하려 하였지만 결국 파산위기에 처했고 2018년 5월에 파산했다는 보도가 나오기도 했지만 파산보호 신청으로 파산은 면했다고 합니다.

     

     

     

    댓글

    Designed by JB FACTORY